법화원은 서기 824년에 창건된 과거의 신라인, 현재의 한국인로 장보고가 세운 당나라 자오동(胶东) 최대의 불법(佛教)사찰 중 하나로 지금으로부터 약 120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법화원은 개원 당시 초대한 스님들이 천태종파(天臺宗派)에 속하여 《법화경(法華經)》을 낭송했기 때문에 '적산법화원(赤山法華院)'이라 명명하였다.서기 838년 일본의 고승 원인(圆仁) 스님이 당나라에 와서 법을 구하여 거의 3년 동안 법화원에서 객거하였다.귀국 후 《입당구법순례행기(入唐求法礼禮行記)》를 저술하였는데, 이 책은 《마르코폴로행기(波罗行波行記)》, 《대당서역기(大唐西域記)》와 함께 동방 3대 여행기로 불리며 적산법화원을 상세하게 묘사하여 적산법화원을 국내외에 널리 알리게 하였다.당나라 무종이 멸불하는 동안 법화원은 소실되었고, 1987년 『입당구법순례행기』라는 책에 의해 유적을 찾아냈으며, 1988년 중건하여 1989년 5월 1일 개관하였다.사찰 전체가 대웅보전(大雄宝殿), 지장전(地藏殿), 관음전(观音殿), 삼불보전(三佛宝殿)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원인(圆仁) 스님은 '입당구법순례행기'에서 "남쪽에 암령이 있어 물줄기가 정원을 지나 서쪽에서 동쪽으로 흐르고, 서남쪽으로는 산봉이 이어져 있고, 동쪽은 바다를 바라본다"고 법화원의 위치를 이렇게 기록했다.사찰에 들어서면 좌우에 각각 종고루가 있는데, 종고루는 고대에는 주로 시간을 재는 건축물로 사용되었으나, 지금은 사람들이 평안과 행운을 빌고 싶으면 종고루에 가서 북을 치고 종을 칠 수 있다.
법화원 유적(法华院遗址)
지장전 남쪽에 위치한 적산법화원유적비는 1988년 설치됐다.당시 일본적산법화원연구회와 일본적산사찰(赤山禅院)의 전예각조(戰睿覺照)를 주재하고 이곳에 와서 비석 건립식에 참석하였는데, 전예각조는 비석 앞에서 오랜 시간 독경을 하며 원인(圆仁)스님을 추모하고 법화원 승려들의 도움을 감사하였다.유적비 앞면은 ‘적산 법화원 유적'으로, 뒷면에는 원인 스님이 중국에서 불법(佛法)을 구하게 된 경위를 중·일 양국 문자로 기술했다.
장보고 공적비(张保皋功绩碑)
관음전 남쪽에 있는 장보고 공적비는 2005년 적산경관과 한국장씨대종회가 합동으로 건립한 것으로 장보고의 적산법화원 건립과 당시 원인(圆仁) 스님에 대한 도움을 기념하고 있다.장보고 공적비는 세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 위에 새겨진 비두에는 이룡희주(二龙戏珠)가 새겨져 있다.용은 중국의 상서로운 신수의 으뜸이고, 그 아래 비좌는 거북이며, 거북도 일본의 마스코트이며, 공적비 전체가 법화원의 '일절련삼국, 정전중한일(一寺连三国,情传中韩日)'의 특징을 보여준다.